야식일기

1 2017. 10. 29. 03:37 |
어제부터 오늘은 바쁜 날이었다. 어제는 중간고사 마지막 과목 시험을 끝냈고 끝나고 나서 바로 레슨을 받았다. 레슨이 끝난 뒤엔 집으로 곧장 가서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K를 만나러 갔다. 오늘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고(역시나 전시는 병신이었음) 집에서 잠시 쉬다가 동방에 가서 어제 레슨받은것을 두시간 연습했음. 갔다와서는 김치찌개 한뚝배기 하심

근데... 근데 새벽 두시쯤 되니까 양식이 필요해졌다. 야식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인것이다. 괜히 뜬금없이 평소에 자주 먹지도 않는 닭발이 땡겨서 배민을 켜고 전화를 했다.

한 아주머니가 굉장히 공손하게 전화를 받는데, 첫인사만으로도 이 아줌마는 초보이거나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싶고 또 그러면서도 사람을 굉장히 기분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그런 스타일이었음.
보통 주문잘받는 집은 그냥 전화받는 동시에 주소요~하거나 예~ 하고 굉장히 빨리 전화가 끝나는데 이 아주머니는 "네 감사합니다 어떤 메뉴를 주문하시게씁니까?" 하고 문어체로 굉장히 어색하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이 집 메인 메뉴에는 국물닭발과 무뼈닭발, 오돌뼈가 있었다. 나는 오돌뼈가 무슨 메뉴인지 잘 몰랐다. 내가 원한 것은 뼈있는 닭발이었기에 나는 "아 제가 뼈있는 닭발을 시키고 싶은데요 혹시 메인 메뉴에~" 하는데
갑자기 내 말을 뚝 끊더니
"아 근데 죄송한데요 손님 주소를 먼저 불러주시겠습니까~?" 하는거다 주소 받아적는것도 한참 걸렸음 ㅠ

그래서 내가 "뼈있는닭발이랑 주먹밥이 있는 세트"를 시키고 싶다 그랬는데, 아줌마가 "네 오돌뼈랑 주먹밥 계란찜 세트요~" 하는거다.
그래서 난좀 당황했지만 아 닭발도 연골이니까 오돌뼈라고 부르는건가?? 싶어서
"아 계란찜 말고 주먹밥만 있는 세트가 메뉴에 있던데요" 하니까
아 네 맞아요~ 하면서 오돌뼈랑 주먹밥 세트를 시켜주었다.
(메뉴에 뼈있는닭발과 주먹밥 세트는 없었다. 알고보니 통닭발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쓰고 있었고 그냥 단품으로만 메뉴에 올라가 있었음. 이것이 우리의 대화를 더욱 혼란하게 했다)
무튼 종업원은 "네 손님 맛있게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하는 이상한 인사와 함께 멀어져갔다. 통화 시간은 1분 47초였고 나는 이때부터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있었다.

그리고 배달이 왔다. 두둥
메뉴를 열었는데 제육볶음과 된장찌개, 주먹밥이 덩그러니 있어서 굉장히 당황하였다..
이걸 어케하지 싶었는데 마침 배달원이 카드기계를 안갖고와서 다시 가지러간 참에(배달원도 띨했거나 식당과 배달원 사이에 얘기가 잘 안된 모양 암튼 이집은 좀 불통이 컨셉인듯) 가게에 전화를 해봐야겠다 해서

"아까 주문한 집인데 메뉴가 잘못 온 것 같아서요"
"어떤 게 갔는데요?"
"아 저는 뼈있는 닭발이랑 주먹밥을 시키고 싶었는데 제육볶음이 왔어요"
"아 손님이 말씀하신건 오돌뼈였는데요. 제가 처음에 계란찜 하시냐고 물어봤다가 틀릴수도 있는거니까 두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계란찜 안한다 그러셔가지구.."
"아 그러면 오돌뼈가 이 돼지고기인가요?"
"네."
"...아...."
"네 그럼 손님 제가 주문해드린 메뉴에는 이상이 없는거죠?"
"아 네ㅠㅠ 그건 그렇긴 한데 이게 "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할수있는게 없었다 나도 멍청하게 주문을 했으니까
ㅠㅠ 곧 카드기를 가지고 배달원이 다시 왓고 나는 울면서 계산을 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경제학도이므로
그래 주문이 잘못 들어갔건 말았건간에 일단 내가 오돌뼈에 지불한 돈은 sunk cost이므로 내 기분이 상한것과 별개로 현재 시점에서 나의 경제학적 순이익을 따져야해 어쨌든 야식은 나에게 효용의 증가를 가져다줄지도 몰라! 하고 먹기시작

실패했다
한밤중의 돼지고기는 즐겁지 않았고 심지어 매웠다 된장찌개는 처치곤란이었다
닭발이었다면 달랐을거다 닭발이었다면 살도많이 안찌고 양도적었을거다

슬프고 돈이 아까웠다 오돌뼈와 찌개에 낭비된 음식물쓰레기가 떠올라서 일단 찌개는 열어보지도 않았으니 냉동실에 넣어보았다 엄마가 가끔 국을 얼려서 보내줄때처럼 먹어볼까 하고

하지만 결국 내가 할수있는건 배달온 큰봉지에 오돌뼈와 남은주먹밥 냉장고에 넣었던 찌개를 다시꺼내서 버리는것뿐이었다
돈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칼로리도 섭취하고
의사소통은 똑바로 해야한다는 것과 역시 경제학은 옳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여느 정형화된 문제에서처럼 오돌뼈를 손대지않고 그대로 버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이것으로 오늘의 야식일기 끝
앞으로 야식이 먹고싶어질때는 이 글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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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voushideout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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