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

무덤 2015. 11. 15. 22:42 |
수시알바가 끝났다. 학부모님들과 수험생들과 그 불안한 표정들하며 망설이는 발걸음들을 보고 오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딱히 성공적이지도 않고 실패랄 것도 없는 입시를 겪은 나로서는 입시철이 되면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마 한국 입시를 경험한 사람은 모두가 이 비슷한 기분을 공유할지도 모르겠다.

고사장으로 가는 길을 묻는 질문 말고, 내게 사적인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어오는 학부모님은 대부분 재수생 이상의 자녀를 두신 분들이었다. 그들이 내 과를 묻고, 내가 합격했던 전형과 학교 생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자연스레 내 입시와 지금 학교 생활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하면 싸우게 되고, 친구들과 얘기하면 그저 서로가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데, 아마 처음 보는(그리고 앞으로 볼 일 없는) 낯선 어른이 오지랖 없이 그냥 질문을 툭 던지고 가는 경험은 처음이어서 그랬나 보다. 학부모님들이 내게 질문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나를 성찰하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아무렇게나 가고 싶은 학과를 선택하고, 그저 나쁘지 않다는 이유로 입시를 좋게좋게 통과하고 난 지금 내 대학생활은 순탄치 않다. 학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이 문제이다. 내가 만약 직장을 정하는 일도 입시처럼 막 결정하게 된다면 난 분명 평생을 이렇게 한심하게 살다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던 학문을 해 볼까 하고 대학요람을 폈다가, 다시 덮었다. 내가 공부를 싫어할 것임을 너무 잘 알기에ㅋㅋ 결국은 가던 길을 열심히 좀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없지만 그래도 좀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내일 아침이면 사라져버릴 결심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오늘 기분을 기록하기 위해서 글을 남겨 본다.
Posted by nervoushideout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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