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맹

무덤 2015. 11. 7. 20:16 |
3년 전 대학교 입학 선물로 60만원대 노트북을 받았다. 나는 2년간 이걸 막 다루다가 고물로 만들어 버리고는 팽개쳐두었는데, 최근 다시 개인 pc가 필요하게 되면서 소생시켜보려 애쓰고 있다.
지금 옆에서 열심히 포맷 중이다.

나도 노트북처럼 소생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내 상태는 저 고물 노트북보다도 심각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혼자서 맴도는 삶을 살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 삶을 한번 부정당하고 나니 예민해진다.

저 노트북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두렵다. 사실 첫 번째 포맷을 실패해서 두 번째 시도 중인데, 불확실하더라도 어쨌든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pc를 복구 중인데. 나는 대체 잃어버릴 자료들도 없으면서 뭐가 무서워서 리셋 버튼을 누르지도 못하고 있는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을 해 본다. 너무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보다 잘난 체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결국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이렇게 바들댄다.

지금으로서 내가 선택한 해결책은 일단은 계속 홀로 있자는 것. 일단 끝장을 보자는 것. 저번처럼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아야겠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말처럼 쉽지가 않다. 노트북 화면에선 "Resetting your PC"라는 문구 위에 흰 점 여섯 개가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나도 리셋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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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voushideout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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